이 멜로디는 우리가 저마다 느끼고
마주하는 삶 속의 다양한 리듬으로 변주 합니다.
이 리듬은 누군가의 아침을, 낮을,
그리고 밤을 연주하는 음악이 되고
우리의 관계를, 감정을, 상황을
이야기하는 에피소드가 됩니다.
오선지는 아직 비어있습니다.
“음악은 감정을 환기시켜주고 소환해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요.
에피소드와 함께 만드는 생활음악이
훗날 이곳에 머문 사람들에게 추억을 소환해줄 강력한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믿어요.”
예전부터 브랜드와의 협업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았다고 들었어요. 특히 공간 브랜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나요?
흔히 제품이라고 하면 특정 물건을 하나 떠올리는데 공간은 그러한 모든 물건을 담을 수 있는 제품이라고 생각해요. 다채로운 이야기들로 가득 찬 제품이라니, 무척 흥미로울 것 같지 않나요?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각자의 공간에서 몸을 누이기도 하고 공유 공간에 모여 이야기 나누는 모습, 그 설렘 안에 우리의 음악을 공유하고 싶어요.
몇 년 전부터 미래의 주거 환경 중 하나로 공유 주거가 주목을 받고 있어요. 국내에서도 여러 브랜드가 문을 열었고요. 그 중에서도 에피소드와 함께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에피소드’라는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름에서 만든 사람들의 의도를 잘 읽을 수 있었고요. 제가 바라던 협업 프로젝트의 이미지와도 잘 맞았습니다. 공간은 시간을 기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음악도 마찬가지거든요. 각 사이트마다 다른 형태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에피소드와 함께 만드는 프로젝트 이름이 ‘생활음악’입니다. 생활음악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음악이 주인공이 아닌, 공간을 압도하지 않는 음악이 생활음악입니다. 한 사람의 하루 또는 일주일, 일년 중 찰나의 순간에 그 음악이 하나의 배경음악처럼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름 지었습니다. 음악을 만들기에 앞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어요. 첫 번째, 음악이 앞서지 않는다. 두 번째, 단순한 음악이면 좋겠다. 악보만 있으면 누구나 똑같이 연주할 수 있는 동요 수준의 소품곡(小品曲)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랑, 이별, 즐거움 등 이 공간에서 벌어지는 어떤 개인의 특정한 순간을 담아내는 곡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듯 특정 장면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그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토이로 활동할 때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했는데요, 시나리오를 쓰듯 곡을 쓰면 마치 음악이 보이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생활음악으로 들려드릴 곡의 제목은 <일요일 오후>입니다. ‘늦잠 자고 일어난 한가로운 일요일 아침, 창 밖을 바라보며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밀린 일을 좀 해볼까. 아님 장을 볼까,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꺼내 요리를 해볼까 고민한다. 이렇게 일주일의 끝자락이 지나가고 있다.’ 같은 장면을 상상하며 그 공간과 시간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담아 피아노 곡으로 심플하게 만들었어요. 9월에 오픈할 두 번째 곡은 <아주 사적인 밤>이에요. 침잠한 분위기가 들 때,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머릿속이 복잡해서 잠 못 드는 새벽 등을 떠올리며 만들었어요. 생각의 깊이를 더 묵직하게 가져갈 수 있도록 돕는 음악이 될 거예요.
생활음악을 통해 내년 3월까지 한 달에 한 곡씩 발표할 예정인데, 곡 작업을 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한 달에 한 곡씩 발표되기는 하지만 전체의 음악을 모아 한 앨범으로 들을 때 모든 곡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어요.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 물 흐르듯 공간 안에서 흐르는 음악이 되도록 할 거예요. 우선 제가 느끼는 감정을 풀어내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대중성이나 화제성 등에서 해방되어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음악의 본질에 집중한 매우 쉬운 곡을 만들 거예요. 제 이름을 걸고 음반 발표를 하는 것이 약 8년만인데 오랜만에 해보고 싶은 것을 이뤄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 같아 즐기며 작업하고 있어요.
주거 문화에서 생활음악이 어떤 역할을 하게 될거라 예상하시나요?
음악은 감정을 환기시켜주고 소환해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요. 10년 전 누군가와 이별했던 그 순간을 떠올려 보세요. 상대방의 표정, 공간, 상황 등의 장면은 퇴색되어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음악은 변하지 않죠. 감정을 소환해내는 힘이 있어요. 이처럼 에피소드와 함께 만드는 생활음악이 훗날 이곳에 머문 사람들에게 추억을 소환해줄 강력한 매개체가 될 것이라고 믿어요.
생활음악 프로젝트를 기념하며 만들고 싶은 것이 있나요?
저는 아직 손글씨를 쓰고 직접 악보를 그리는 걸 좋아합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제 손악보까지는 아니더라도 꼭 악보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최근 음악은 혼자서 구현하기 어렵잖아요. 다양한 악기 연주 뿐 아니라 컴퓨터 작업도 들어가기 때문에 감상은 가능하지만 따라하기는 어렵죠.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악보대로 손가락을 움직이면 제가 녹음한 것과 똑같은 소리가 날 거예요. 악보를 보고 따라하면서 내 일상의 배경음악을 그대로 재현해보는 재미를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음악이 있어 더 특별했던 순간이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20대 후반쯤 독립해 처음 혼자 7-8평 정도 되는 오피스텔에서 살았던 적이 있어요. 공간의 반 이상을 음악 장비로 채우고 작업에 몰두하던 때인데, 김연우 씨가 부른 곡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만든 때 이기도 하죠. 사무실이라고 부르는 게 맞나 싶을 만큼 일하는 공간과 쉬는 공간이 뒤섞여 있던 곳이었지만 잠도 자고 작업도 하고 친구들을 불러 술도 마실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 너무 좋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새벽 4-5시쯤인가, <거짓말 같은 시간>의 반주 트랙을 만들어놓고 혼자 맥주를 한 잔 마시며 ‘나 진짜 천재구나’라고 생각하며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생각해보니 저 참 재수 없군요.
Editor by 박은영